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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은 뒷마당

[스크랩] 슬픔이란 문을 닫을 시간

by 아침이슬산에 2009. 6. 4.
슬픔이란 문을 닫을 시간



한 사내가 울고 있습니다. 그냥 눈시울을 적시는 것이 아니라 온 몸으로 우는 모습의 사진을 봅니다. 명색이 전직 대통령이셨다는 분입니다.
이 나라의 백성뿐만 아니라 해외 교포들이 광화문 밖의 대형 스크린 화면과 인터넷을 통하여 보고 있고 세계 곳곳으로 실황 중계되고 있는 공식석상에서 온 얼굴을 찡그리고 입을 함지막하게 벌리며 울고 있습니다. 팔순이라는 나이답지 않게 우시는 그 모습을 보는 저도 가슴이 찡해져 눈물이 맺힙니다.
울고 계시는 그 분 틈 사이로 매섭게 째려보는 분도 있습니다. 행사 내내 미소를 짓고 다니시며 이분 저분들과 인사를 나누시던 분입니다. 마치 지금 어느 집에 초상났나 하는 표정이 섬뜩합니다.
한 여름의 더위 속에 망자를 기다리다 지쳐 졸고 계시는 분도 계시고, 다리를 꼬시고 몸을 반쯤 비틀고 앉아 지루해하시는 표정을 짖고 계시는 분도 계시고, 아예 이런 행사와는 관심이 없다는 듯 신문을 보고 계시는 분의 사진도 봅니다.
사람 사는 세상 같습니다. 자유로운 나라입니다. 슬픔도 기쁨도 누구에게나 강요할 수는 없는 것이겠지요. 우리나라는 개인의 감정을 존중할 줄 아는 민주주의 국가이니까요.



리틀 노무현이라 부르는 이 분도 참 서럽게 우는 모습의 사진을 이곳 저곳에서 보았습니다. ‘80년도 봄’을 이끈 리더로서 배울 만큼 배웠다고 자부하면서도 고졸 출신인 노무현 대통령 후보 캠프에 확실히 기고 들어갔다는 그의 말처럼 그 분을 정말 좋아하였던 이였습니다.
울음을 참을 줄 모르고 남들 앞에서 눈물을 줄줄 흘리고 다니던 사람들이 어디 한 둘이었겠습니까 마는 우는 사람들 모습의 사진을 보는 이도 슬픕니다. 슬픔의 현장에서 슬픔을 함께 나눌 수 없다는 슬픔에 더 슬픕니다.



<애도(哀悼)는/ 산 자가 죽은 자를/ 가슴으로 만나/ 서로 하나가 되는 일이다> 라고 말한 이상원의 글처럼 애도(哀悼)는 산 자가 죽은 자를 만나는 시간인 것 같습니다.
인터넷에서 그 분의 갑작스런 서거소식을 읽은 후 7일이라는 국민장 기간이 모든 이들의 슬픔 속에 훌쩍 지나가고 그리고 또 며칠이 더 흘러갔지만 제게는 아직도 믿어지지 않습니다. 그렇게 쉽게, 허무하게 가실 분이 아니라는 것은 저뿐만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더 잘 알고 있는 일이지 않습니까.



<조선 건국이래로 600년 동안 우리는 권력에 맞서서 권력을 한번도 바꿔보지 못했습니다. 비록 그것이 정의라 할지라도, 비록 그것이 진리라 할지라도 권력이 싫어하는 말을 했던 사람은, 또는 진리를 내세워서 권력에 저항했던 사람은 전부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 자손들까지 멸문지화를 당했고 패가망신했습니다.

600년 동안 한국에서 부귀영화를 누리고자 하는 사람은 모두 권력에 줄을 서서 손바닥을 비비고 머리를 조아려야 했습니다. 그저 밥이나 먹고 살고 싶으면 세상에서 어떤 부정이 있어도, 어떤 불의가 눈앞에 벌어지고 있어도 강자가 부당하게 약자를 짓밟고 있어도 모른척하고 고개 숙이고 외면했어야 했습니다.

눈감고 귀를 막고 비굴한 삶을 사는 사람만이 목숨을 부지하면서 밥이라도 먹고 살 수 있었던 우리 600년의 역사. 제 어머니가 제게 남겨주었던 제 가훈은
'야 이놈아 모난 돌이 정 맞는다. 바람 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눈치 보면서 살아라'
80년대 시위하다가 감옥간 우리의 정의롭고 혈기 넘치는 우리의 젊은 아이들에게 어머니들이 간곡히 간곡히 타일렀던 그들의 가훈 역시
'야 이놈아 계란으로 바위치기다. 그만둬라. 너는 뒤로 빠져라'
이 비겁한 교훈을 가르쳐야 했던 우리 600년의 역사, 이 역사를 청산해야 합니다. 권력에 맞서서 당당하게 권력을 한번 쟁취하는 우리의 역사가 이루어져야 만이 이제 비로소 우리의 젊은이들이 떳떳하게 정의를 이야기할 수 있고 떳떳하게 불의에 맞설 수 있는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

"언론에게 고개를 숙이고, 비굴하게 굴복하는 정치인은 되지 않겠습니다. 끝까지 맞서 싸울 것입니다. ">

-슬픔과 노여움- 대통령후보 경선 연설 중에서



“언론에게 고개를 숙이고, 비굴하게 굴복하는 정치인은 되지 않겠습니다. 끝까지 맞서 싸울 것입니다” 라며 백성들의 심금을 울리던 그 분이 이렇게 쉽게, 허무하게 떠나시리라고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습니다.
이것은 무서운 음모가 있는 살인입니다. 어설픈 현장조사와 알리바이가 아니더라도 처음부터 무리를 지어 작당하여 당신을 죽이려 덤벼든 자들의 소행입니다. 이 권력이 살아있는 한 밝혀지지 않을 의문사입니다.

당신의 죽음을 슬퍼하는 이들이 올리는 당신의 추모의 글들을 읽으며 당신의 생전의 모습을 떠올립니다.

<시인 신동엽은 자신이 꿈꾸는 정치적 유토피아를 이렇게 노래한 바 있다.
“황토빛 노을 물든 석양, 대통령이라고 하는 직함을 가진 신사가 자전거 꽁무니에 막걸리 병을 싣고 삼십 리 시골길 시인의 집을 놀러 가더란다.”
시민들 위에 있기보다 그 옆에 선 친구이기를 원했던 노무현 대통령은 퇴임 후에야 비로소 신동엽이 꿈꾼 풍경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는 봉하마을 점빵에서 담배를 피우고, 손녀를 손수레에 실어 자전거로 끌고, 동네 사람들과 농사를 짓고, 방문한 사람들과 환담을 나누었다.
그는 출발점으로 되돌아가 새로운 삶의 주기를 시작하고자 했고, 공동체를 만들고 생업을 일구는 ‘완전히 다른’ 정치를 시작하고자 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의 새로운 실험은 싹도 내밀기 전에 짓밟혔고, 더불어 그가 구현한 신동엽의 풍경도 너무도 짧게 스러져버렸다. - 김종엽 한신대 교수>

<‘논두렁에 버렸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 우리는 이런 장면들을 상상할 수 있다.
삽으로 논두렁을 파는 누군가의 뒷모습, 진흙이 묻어 원래 제 빛을 잃어버린 시곗줄, 멈춰버린 분침, 논두렁에 어수선하게 찍힌 발자국 등등. 문장이 이렇게 이야기로 건너오게 되면, 이 이야기는 멈춰지지 않는다.
아무리 사실 관계가 밝혀진다 하더라도 나는 계속 거듭해서 논두렁에 시계를 버리는 누군가의 초라한 뒷모습을 상상할 것이다. -윤성희 소설가>



<슬퍼할 권리를 되찾고 싶어. 잔잔하게 눈물 흘릴 권리, 많은 위로를 받으며 흐느껴 울 권리, 핑핑 코를 풀어대며 통곡할 권리. 지나친 욕심일까.
그러나 울어 보지 못한 것이, 언제부터였는지 모르겠다. 고작 남의 울음에 위탁한 울음. 하도 오래 살았더니 울고 싶은 일이 너무 많아. 그러니 누가 나를 좀 안아 다오. 그 가슴을 가리개 삼아 남의 눈물을 숨고 죽은 듯이 좀 울어 보게. –노혜경>

“하도 오래 살았더니 울고 싶은 일이 너무 많아……”
앞으로 울어야 할 날이 또 얼마나 더 남았을까? 웃고 있는 자들 속에서 모멸을 당하며 울어야 할 날들이 얼마나 더 많이 있어야만 이 생이 끝날까?

이제 전설 속의 님이 되신 당신을 사랑합니다. 이 생이 다하는 날까지 당신을 추억하며 눈물을 흘릴 당신의 친구들과 함께 영원히 당신을 사랑하겠습니다. 당신은 살아서나 죽어서나 영원히 우리의 대통령이기 때문입니다.
부디 먼 길 편히 가시길 바랍니다. 모든 애증과 애환 모두 훌훌 털어버리고 무거웠던 짐 내려놓고 가벼운 마음으로 레테의 강 건너가시길 바랍니다.
‘할아버지는 어디에 가셨어?’ 라며 당신의 손녀가 지어 보이던 승리의 브이(V)자처럼 이긴 자의 걸음걸이로 뒷짐지고서 가세요. 당신이 다하지 못한 일은 이제 살아남은 자들의 일입니다.
오늘은 마음껏 슬퍼할 권리를 주신 당신께 감사 드립니다. 이제 동이 트고 날이 밝아오면 당신을 보내드리겠습니다. 어두운 밤을 지키느라 고단하였던 육신, 쭈욱 늘어뜨리고 편히 쉬세요.
‘죽으면 살리라’던 말처럼 당신은 죽음으로써 모든 이들 가슴에 영원히 살아있을 겁니다. 가장 미천한 자리에서 가장 높은 자리에 올라섰으면서도 겸손할 줄 알았고, 막가자는 저들의 오만함도 모두 받아들이며 몸소 민주주의의 모범을 보이셨고, 형평성을 잃은 공권력에 대항할 힘이 없는 약자들의 친구였으며 탄핵이라는 저들의 무지막지한 횡포도 감내하신 당신은 정말 우리의 대통령이었습니다. 살아서나 죽어서나 언제나 당신 한 분만이 진정 우리의 대통령입니다.

대한민국의 16대 대통령이셨던 당신의 명복을 빕니다.




상록수

저 들에 푸르른 솔잎을 보라
돌보는 사람도 하나 없는데
비바람 맞고 눈보라 쳐도
온 누리 끝까지 맘껏 푸르다.

서럽고 쓰리던 지난 날들도
다시는 다시는 오지 말라고
땀 흘리리라 깨우치리라
거칠은 들판에 솔잎 되리라

우리들 가진 것 비록 적어도
손에 손 맞잡고 눈물 흘리니
우리 나갈 길 멀고 험해도
깨치고 나아가 끝내 이기리라
출처 : 어둠 속에 갇힌 불꽃
글쓴이 : 김솔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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