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동티벳 (14년)

여행 8일차 (1) - 오지속 소도시 바이위(白玉.)

by 아침이슬산에 2014. 7. 22.
. . . 14 동티베트 여행기 8일차 (1) - 오지속 소 도시 바이위(白玉. 3040m) 2014, 5, 26 (월) 야칭스의 아침을 마치고 다시 먼지와 덜컹거림을 친숙하게 받아 드리며 바이위로 왔다 야칭스에서 바이위(白玉. 3040m)로 가는 길 역시 강을 낀 깊은 협곡에 비포장의 험로다. 바이위현은 천장남로와 북로 사이 스촨성 서쪽 끄트머리, 진사강(金沙江)을 사이에 두고 서장자치주와 마주하는 변방에 위치한다. 중국지도(1천200만분의 1)를 보면 깐즈에서 시작된 일반 공로(현도) 표시인 붉은 실선이 바이위에서 끝나고 그 주위에는 아예 도시 표시가 없다. 그만큼 교통이 불편해 접근하기가 어려운 오지라는 얘기다. 말이 현도(현에서 관리하는 도로)지 우리나라의 높은 산에 나있는 임도만도 못한 오프로드다. 원래는 야칭스에서 다시 깐즈로 나가서 신루하이로 들어가는 계획이었지만 동티벳에 와도 좀처럼 오기 힘든 중국 최대 불경 목판인쇄를 하는 곳 '인경원'을 보고 더거를 거쳐 빙~ 돌아서 신루하이로 가는 많이 힘든 코스로 변경한다. 진행팀의 배려이다 ㅋㅋ 점점 목구멍에서 난타전이 벌어지는듯 침 삼키기도 힘들고 밥맛도 없고, 의욕마저 저하된다 어제 바이위에 도착하자 마자 시끌벅쩍한 식당에서 저녁후 바로 잠을 청해 보는데.....뒤치락 뒤치락... 26일 아침이 밝으니 반갑다 바이위현은 워낙 오지라 외지인의 출입이 많지 않아 원시적 생태계와 티베트의 옛 전통을 비교적 온전하게 보전하고 있다. 인구 4만 명에 한족도 이주를 주저하는 토종 냄새나는 티베트 전통거주지역이다. 바이위 현에는 다른 지역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부계중심의 마을공동체와 일처다부제 흔적이 아직도 남아 있다. 불과 반세기 전만해도 남자 중심의 원시 씨족사회 형태와 비슷한 거빠(戈巴)라는 혈연공동체 조직이 존재하며 마을을 운영했다고 한다. 오랜 세월 고립된 오지에서 살다보니 외부인의 접근이나 간섭을 거의 받지 않는 세상과 동떨어진 폐쇄성 때문에 이같은 공동체가 가능하지 않았나 싶다. 거빠는 40~50가구 규모의 마을단위로 형성됐는데 여자의 인권이나, 권리가 무시된 부계사회조직으로 거빠 내 사람들 끼리는 통혼을 할 수 없다. 18세 이상의 남자만 참여할 수 있는 거빠 회의에서 상벌, 공동작업 및 손해, 이익의 공동분배 등 마을의 모든 일을 결정하고 시행했다 한다. 여자는 지위가 낮아 상속권, 결혼 결정권이 없고 여러 형제가 한 여자와 결혼하는 일처다부제가 근래에 까지 존재했다고 한다. 특히 어린 나이에 죽으면 못다 산 삶을 나무와 같이 크며 살라는 의미에서 수목장을 지냈다. 1974년 까지만 해도 바이위현의 가이위향(蓋玉鄕), 사마향(沙瑪鄕), 산옌향(山岩鄕) 등 3개 향에 크고 작은 거파 89개가 존재한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산옌향 마을은 가구 대부분이 일처다부제의 결혼제도를 유지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른 아침을 먹으러 빈관 건너편쪽에 있는 식당으로 간다 워낙 쓰촨 깊숙한 오지속 도시..... 필요한 생필품이나 생활용품 등등을 사서 시골로 떠나는 사람들이 이른 아침부터 흥정중이다 야칭스부터 따라온 감기기운으로, 남은 여정이 걱정스럽다 ㅠㅠ

 

 

우리가 머물렀던 빈관 (분홍색건물)과 차카게 아침 치카치카중인 꼬마

 

여느 동티벳 깊은 오지속 소도시와 다름 없다

너무 소박해서 그래서 마음이 짠하기도 하고...

 

죽으로 아침식사후 더거로 출발 하기전에 백옥사를 둘러보기로 한다

백옥사도 아름다워서 맞은편 산으로 올라가서 건너다 보면 풍경이 아주 멋지다는데 그럴 시간은 없으니

바로 백옥사를 찾아 차량으로 이동

진행팀도 안가본 곳이라 길을 물어물어 완전 미로같은 길로 올라갔다

나중에 알았는데 이곳 사람들은 주로 걸어다니닌 찻길을 잘 몰라서리, 좋은길 놔두고 반대방향으로 올라 갔다...ㅋ

 

 

 

바이위는 캄 지역의 불교발상지로 닝마파의 오래된 사원들이 많다. 동티베트의 전설적인 영웅인 게사르왕의 숨결이 여기저기 배어있는 신화와 전설의 고장이기도하다. 바이위는 티베트어로 ‘길한 공덕이 있는 땅’이라는 의미다. 백옥사 건물과 승려촌의 단청을 비롯 시내 건축물들이 대부분 여느 도시보다 컬러가 다양하고 화려하다. 협곡에 갇힌 도시전체가 뉘엿뉘엿 지는 석양이 들면 빨강, 파랑, 노랑, 초록, 하양 등 원색으로 짙게 물들어 화려함을 더한다.

 

 

 

 

 

 

 

바이위 현에는 다른 지역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부계중심의 마을공동체와 
일처다부제 흔적이 아직도 남아 있다.
불과 반세기 전만해도 남자 중심의 원시 씨족사회 형태와 비슷한 거빠(戈巴)라는 
혈연공동체 조직이 존재하며 마을을 운영했다고 한다.
오랜 세월 고립된 오지에서 살다보니 외부인의 접근이나 간섭을 거의 받지 않는 
세상과 동떨어진 폐쇄성 때문에 이같은 공동체가 가능하지 않았나 싶다.
거빠는 40~50가구 규모의 마을단위로 형성됐는데 여자의 인권이나, 권리가 무시된 
부계사회조직으로 거빠 내 사람들 끼리는 통혼을 할 수 없다.
18세 이상의 남자만 참여할 수 있는 거빠 회의에서 상벌, 공동작업 및 손해, 이익의 
공동분배 등 마을의 모든 일을 결정하고 시행했다 한다. 
여자는 지위가 낮아 상속권, 결혼 결정권이 없고 여러 형제가 한 여자와
 결혼하는 일처다부제가 근래에 까지 존재했다고 한다.
특히 어린 나이에 죽으면 못다 산 삶을 나무와 같이 크며 살라는 의미에서 수목장을 지냈다.
1974년 까지만 해도 바이위현의 가이위향(蓋玉鄕), 사마향(沙瑪鄕), 
산옌향(山岩鄕) 등 3개 향에 크고 작은 거파 89개가 존재한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산옌향 마을은 가구 대부분이 일처다부제의 결혼제도를 유지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백옥사는 닝마파 6대 사원 중의 하나로 1675년 창건됐다. 칭하이, 아바, 깐즈 등지에 말사만 1백여 개를 거느린 큰 고찰이다. 4대 활불인 야마짜시 린포체가 청의 건륭제가 내린 황실대사의 칭호와 금, 은, 상아, 옥석 등으로 만든 조장과 황금글씨로 새긴 조서와 옥교를 받는다. 이를 계기로 백옥사는 명성을 떨치며 불사를 크게 일으켜 황제가 내린 진귀한 ​보물들을 지금까지 보존하고 있다. 제7대 주지스님은 거대한 기둥 20개가 떠받치는 영골 탑을 짓고 그 안에 3.5m 높이의 무량수불 금부처상을 봉안하고 이후 1백여 개의 불상을 들여와 모셨다. 장경루에 4백여 권의 불경이 있고 매년 5월 초(티베트력)에 성대한 불교축제가 열린다. 현 12대 활불은 인간의 전생을 보는 초능력이 있다고 소문이 나 수행승이나 참배객이 끊이지 않고 있다. 절을 에워싸고 있는 거대한 수행 승려 촌이 말해주듯 불학원도 함께 운영하고 있다. 이른 오전 시간대라 그런지 절 안은 조용하고 몇몇 참배객만 오간다

불학원의 수행승이 수백 명에 이른다는데 아직 강습시간이 아닌가 보다 학승들은 대법당에서의 단체강습과 함께 시간에 맞춰 각자의 스승을 찾아 공부를 하며 거처에서도 명상과 불경공부로 시간을 보낸다 한다. 지난해 이곳 백옥사 승려들이 대규모 시위를 벌여 중국정부가 긴장하기도 했다. 백옥사 불학원 승려가 중국정부의 티베트주민 단속을 비판한 혐의로 연행되자 4백여 명의 동료승려들이 석방을 요구하며 현 정부 청사로 몰려가 시위를 벌였다는 기사가 한국 신문에도 보도됐다.

 

 

 

 

주 법당 건물과 그 옆동들은 최근에 칠을 다시 했는지 아주 깔끔하고

그 섬세하고 화려함은 혀를 내두를 지경이다

 

 

 

 

 

 

 

경내 마당 다른쪽에 있는 법당...(이곳을 안들어 가본걸..나중에 후회 ㅋㅋ)

단청 페인트들이 더러 더러 벗겨져 세월을 고스란히 느끼게 한다

동쪽을 정면으로 보고 있어서 앞 베란다(?)앞에 가림막 거튼도 있다.

 

 

 

단청의 화려함과 섬세함이 극치를 이룬다

 

 

 

 

마당 끝 난간은 밑이 절벽이고 양옆의 사발 모양으로 반원을 그린 가파른 산등성이에 스님들의 거처인 벙커(崩柯)라 불리는 집들이 층층을 이루며 빼곡히 들어서 있다. 불학원에서 공부하는 수행승들이 사는 가옥인 벙커는 대개 1~2층으로 못을 사용하지 않고 통나무를 끼워 맞춰 지은 통나무집으로 흰색과 붉은색으로 화려하게 칠해져 있다.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한 웰빙주택이다. 에도 강해 2013년 백옥현 지진 때 가옥 피해가 거의 없었다.

 

이른 아침인데도 벌써 강열한 햇살이 눈이 부시지만 그 맑고 투명한 빛의 깨끗함이 그대로 느껴진다

 

 

 

 

마치 전망대 같다

햇살이 뜨거운데 스님들이 썬텐하러 나온건 아니시것지 ㅋㅋㅋ

덕분에 그림이 좋네

 

 

 

 

 

 

몇단어 아는 중국말 총 동원해서 인사하고

 

 

기념 사진도 기분좋게 찍는다

 

 

저 전망대 같은 곳에서 내려다 본 바이위스

그 비탈지역에도 저렇게 학교로 보이는 큰 건물과 심지어 운동장 까지 !!!

 

 

 

아침 참배를 왔는지... 경내를 바쁘게 지나는 사람들

 

 

 

 

 

 

 

 

 

 

 

 

정말이지 세월이 고스란히 읽혀지는 건물과 출입구 문

이 건물 뒤로 돌아서니 아득히 절벽아래로 바이위스 외곽지역이 한눈에 들어온다

 

 

 

 

저 아래 진사강은 운남성으로 이어진다

 

 

엄청난 경사면에 지어진 건물들이란걸 위에서 내려다 보면 더욱 느낄수 있다

 

 

 

 

그리고 백옥사를 떠나기 직전 나타난 천사들~

 

 

 

 

 

 

 

정말 비 현실적인 비율의 인형 같은 얼굴이다

 

 

 

 

동생도 요렇게 이쁘고

 

 

형아도....이집 아이들이 다 이쁘다

 

 

 

크~ 아깝게 아기가 웃는 모습이 좋은데 살짝 촛점이 나갔다 흑

 

 

한바탕 이쁜 아이들 때문에 소동(?)을 치르고

바쁘게 또 나그네 여정길에 올라 인경원으로 간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