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사랑하다가 사랑하다가/김 종 제
진부령 넘어 미시령 넘어
한계령 새떼들 다 버리고 간
하늘을 큰길 삼아
너를 사랑하다가 사랑하다가
죽으련다 하고
꽃비처럼 환하게 내리는 눈
대지가 한 권 경전이라더니
풀리지 않는 병속의
화두를 내던져 깨뜨리는
누군가의 깨달음이
저렇게 눈이 되어 쏟아지는구나
저
하늘에도 때가 되면
제 모습을 버리고 떠나가는 것들 있는데
이승의 가시덤불 헤치고
험한 골짜기도 지나고
어두운 숲을
지나 빈 들판까지
저렇게 펄럭이며 나려오는
희디흰 만장의 행렬
세상 끝보다 더 먼 곳으로
울려 퍼지는 요령소리 같은 눈은
나무를 흔들고 바위도 흔들고
마른풀도 흔들고 흘러가는 물도 흔들고
땅도 흔들고 사람도 흔들고
눈은 세상 모든
것을 흔들더니
누구의 마음이 내리는 것이라고
누구의 눈빛이 내리는 것이라고
누구의 눈물이 내리는 것이라고
누구의 주검이 내리는 것이라고
너를 사랑하기에 사랑하기에
내가 불꽃으로 타오르다가
내가 얼음으로 얼어붙다가
내가 눈꽃으로
피어 나는 것이라고
내가 죽어 내가 죽어
너의 품에 가서 안기는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