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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스라엘요르단 이집트

#6-1 팔레스타인전쟁

by 아침이슬산에 2020. 2. 2.

 

 

#6편 이스라엘 여행기에서 팔레스타인 지역으로 들어가다 만난 장벽을 보고 마음이 무거워져서...

상식 차원에서 몇몇 인터넷상 올려진 글들중, 그중 2개의 글을 참고 삼아 퍼 와서 올려 본다

 

내용을 알고 나면 뭔든지 이해가 쉬우니까.... 이해하고 공감하는일.... 나쁘지 않다

 

 

 

 

 

이스라엘에는 종교가 유대교, 무슬림, 기독교가 공존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단군의 후손이듯 이 들은 아브라함의 후손입니다. 아브라함은 오늘날 이라크 근처에 살고 있었는데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이동을 해서 정착한 땅이 이 곳 '가나안'입니다. 

요르단으로 넘어온 후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이 야곱을 낳았습니다. 그 당시 흉년으로 먹을 양식이 부족하자 굶주렸던 사람들은 다시 좋은 땅을 찾아 이집트로 이동을 한 후 이집트에서 정착해서 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집트인들이 유대인을 탄압을 하자 그들의 후손인 모세는 사람들과 함께 이집트를 탈출합니다. 이것을 출애굽기(이집트탈출기)라 합니다. 

이집트에서 탈출한 모세는 현재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있는 가나안 땅에 다시 정착하여 잘 살고 있을 무렵 로마제국이 침략을 했는데 로마의 다신교와 유대인의 일신교가 종교적 갈등을 빚게 되고 로마가 유대인의 관습과 종교를 인정하지 않고 황제까지 섬기라고 하자 유대인들은 여러차례 반란을 일으키며 저항을 하지만 로마는 더욱 강력한 핍박을 가하고 결국 유대인을 추방을 합니다. 이로써 유대인들은 전세계로 흩어져서 2000년을 떠도는데 이를

'디아스포라'

라고 합니다.

그 후 2000여년을 떠돌며 살던 유대인들은온갖 핍박과 굴욕에도 유대교 신앙을 지켜왔고 불굴의 의지와 불타는 학구열로 전 세계 곳곳에서 리더로 성장을 하게 됩니다. 

그러던 중 1차 대전이 벌어질 무렵 지도자들을 중심으로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고자 하던 분위기가 일어났는데 높은 경제력과 정치력, 기술력을 바탕으로 당시 세계최강대국이었던 영국의 힘을 빌리려는 전략을 세우고 1차 대전 중인 영국을 지원합니다. 원래 살던 땅으로 돌아가자는 운동이 바로

시온주의

입니다. 시온주의는 흩어져 있던 유대인들은 한 곳으로 불러모으며 유대인 국가 건설을 위한 민족주의 운동입니다. 
시온주의에 결정적 역할을 한 선언이 있었는데 바로 <밸포어선언>입니다. 당시 최강대국이었던 영국은 1차세계대전 중 위임통치중이였는데 외교장관 밸포어가 유대인 국가건설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선언하고 지지하면서 비롯되었습니다. 하지만 영국이 이중성을 보였는데 1차세계대전에 이기려면 아랍국가들에게 잘 보일 필요성이 있어서 이스라엘 독립지지선언 불과 1년 전 같은 땅을 아랍인들에게 독립국가건설을 약속한것 입니다. 이렇게 양쪽으로 약속을 한 것이 아랍인들의 갈등의 씨앗이 됩니다.

이 후 2차세계대전 (1939~1945)이 끝난 후 1948년 5월14일 이스라엘 사람들이 독립을 선언합니다. 1947년 이스라엘 초대총리 벤구리온은 UN의 <팔레스타인 분할안>에 따라 이스라엘에 원래살던 사람들을 팔레스타인 사람들이라고 부르는데 이스라엘의 건국으로 이들은 쫒겨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자 주변 아랍국들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이슬람의 형제로 가만히 볼 수 없어서 이집트, 시리아, 요르단 등 이스라엘을 둘러싼 아랍국들이 연합하여 이스라엘을 공격을 합니다.  이스라엘이 독립을 선포한 그 다음 날 공격을 하는데  이것이 1차 중동전쟁입니다.
 
 

 

1947년도 처음 얘기했을 때는 분쟁지역이다보니 예루살렘은 un에서 관리를 하겠다고 했으나 제 1차 중동전쟁이 나고 난 다음에 요르단이 예루살렘의 동쪽 일부를 차지를 합니다. 



하지만 20년 후 1967년 제 3차 중동전쟁이있은 후에는 이스라엘이 다시 예루살렘을 차지하게 됩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을 자국의 수도로 선포를 했지만 유엔은 동 예루살렘을 불법점령으로 규정을 하면서 동예루살렘은 국제법상 어느나라에도 속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대사관도 예루살렘에 있을 수 없는 상황이고 국제사회에서는 예루살렘이 수도가 아닌 것입니다. 
 
1차 중동전쟁 이 후 팔레스타인 땅을 놓고 4차례에 걸쳐 또 중동전쟁이 벌어집니다. 
 
※ 중동전쟁
1948 ~ 1973년까지 25년간 이스라엘과 아랍연합과의 치열한 전쟁을 말합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이 전쟁에서 승리를 하자 2002년부터 원래살던 팔레스타인 이들은 자치지구로 따로 분리를 해서 가두며 분리 장벽을 건설합니다. 이스라엘안에 두개의 자치지구 서안지구가자지구로 구분하여 팔레스타인들을 가둡니다.



예수 탄생지인 베들레헴은 서안지구안에 위치를 해서 서안지구는 비교적 출입이 자유로운데 가자지구는 출입이 불가능합니다.  반이스라엘저항단체이자 정당인 하마스가 가자지구를 장악을 하면서 테러 등이 끊임없이 일어납니다. 2007년 이후 봉쇄정책은 더 강화가 됩니다. 이 곳은 들어갈 수도 나올수도 없는 땅입니다. 이집트와 이스라엘에 접한 가자지구는 서울의 절반크기로 인구는 170만명으로 가자지구사람들은 이집트로 수백개의 땅굴을 내고 식료품과 연료를 들여오는 열악한 삶을 이어왔습니다. 이스라엘의 입장에서는 하마스의 테러를 막기위해 가자지구를 봉쇄를 하고 하마스입장에서는 이스라엘의 봉쇄에 맞서 땅굴을 파 자원을 공급합니다. 문제는 팔레스타인들은 밖으로 나오지 못합니다. 그렇다보니 팔레스타인도 이산가족이 생깁니다.

출처: https://singletube.tistory.com/264 [방랑을 꿈꾸며]

 

 

 

 

 

이스라엘 팔레스타인의 전쟁이유 

 


  작금의 전쟁이슈에 대한 본질이유를 찾기 위하여 두 가지 사실을 우선 소개합니다. 하나는
팔레스타인 지역의 기구한 역사이며, 다른 하나는 이스라엘과 미국의 관계입니다.
  
=== 첫번째 사실: 팔레스타인 지역의 기구한 역사
  
팔레스타인은 지역 명칭입니다. 원래 가나안이라고 부르던 것을 BC12 세기 경에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가나안 땅을 점령 통치해서
그때부터 지명이 팔레스타인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이후 BC11 세기에는 헤브라이(히브리)인들이 이스라엘 왕국을 건설하고 살다가 그 유명한 솔로몬왕이 사망하면서 유다와 이스라엘로 분리됩니다.
  
그후 이스라엘은 BC8 세기에 아시리아에 망했고, 유다는 BC6 세기에 신바빌로니아에 망하죠.
  
그래서 헤브라이 인들의 뿌리는 사라지기 시작했고 그때부터 유대인들은 뿔뿔이 흩어져서 전 세계를 유랑하게 됩니다.
이것이 유대인들이 유럽 아메리카에 골고루 퍼져있는 이유입니다.
  
한참 후인 BC4 세기에 이 지역은 알렉산더대왕의 통치하에 들어갔으며 BC1 세기에는 로마가 점령합니다.
 
AD7 세기에 아랍인들이 로마를 격파하면서 오스만투르크가 점령하고 있을 17 세기 경까지 이지역은 아랍인들의 통치하에 놓입니다.
중간에 AD12 세기 경에 잠시 십자군이 이 지역에 들어와 예루살렘 왕국을 건설하고 통치하기도 했었지만, 아랍인들이 대부분의 기간 동안
이 지역의 주인이었습니다.
  
오스만투르크가 멸망한 후에 이 지역에는 아랍인들이 국가 및 통치기구 없이 살고 있었는데, 1차 세계대전이 터지면서 영국령에 들어갑니다.
그리고 2차 세계대전이 터진 뒤 영국 정부의 매우 이기적이며 요상하고 모호한 자세가 등장합니다. 팔레스타인에서의 이같은 사기성 짙은
영국의 자세는 인도-파키스탄에게도 비슷하게 발휘되어 오늘날 뭄바이 테러의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영국의 사기성 짙은 자세가 뭐냐 하면요...
세계 각지에 뿔뿔이 흩어져 있지만 경제적으로 크게 성공한 이스라엘인들의 민족지도자들은 2차 세계대전 동안에 영국과 협상합니다.
'전쟁 비용을 지원할테니 전쟁 끝나면 옛 유대땅에 이스라엘을 건국할 수 있도록 승인해달라' 영국이 OK하지 않을 이유가 없죠.
전쟁이 끝났습니다. 우리나라처럼 그간 식민지 통치에 있던 많은 민족들이 독립 국가로 탄생 하는 분위기에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영국에게 강력히 요청합니다.
'우리 땅에 우리 국가를 세우겠다.'
영국은 이스라엘 지도자들과의 선약 때문에 반대도 찬성도 아닌 애매한 자세를 취합니다. 
이틈에 이스라엘 지도자들은 각지의 유대인들을 재빨리 팔레스타인 땅에 모아서 건국합니다.
  
졸지에 2천년 이상을 살아온 삶의 터전을 잃게 된 원래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결사항전으로 영토를 되찾겠다는 결의를 하고
아랍계 세력들을 끌어모아 수차례의 중동전쟁을 일으킵니다.
이렇게 해서 발발한 제1차부터 제4차까지의 중동전쟁과 중요 이력은 아래와 같습니다.
  
1948년 제1차 중동전쟁. 일명 '팔레스타인 전쟁'
        이스라엘은 이 전쟁으로 팔레스타인 지역의 80%를 차지하는 전과를 성취하였고,
        팔레스타인인들은 300만명이 난민으로 전락.
1956년 제2차 중동전쟁. 일명 '수에즈 전쟁'
        이스라엘은 이 전쟁으로 시나이반도의 요충지를 점령.
1967년 제3차 중동전쟁. 일명 '6일 전쟁'
        이스라엘은 이 전쟁으로 시나이반도, 골란고원, 가자지구, 요르단강 서안 등
        이스라엘 본토의 5배에 달하는 광대한 지역을 점령.
1973년 제4차 중동전쟁. 일명 '라마단 전쟁' 또는 '욤 키푸르 전쟁'
        이스라엘은 전쟁 초기의 열세를 만회하고 골란고원에서 일방적으로 승리를 확보한 후
        이집트와 이스라엘이 휴전협정을 체결함으로써 유리하게 종결.
1979년 이스라엘은 시나이반도를 이집트로 반환하며 이집트와 국교를 수립.
        이집트는 그동안 아랍측을 대표로하여 전쟁을 하였으나 다른 아랍국가들과 상의 없이
        이스라엘과 평화협정을 체결함으로써 아랍세계로 부터 강한 반발을 받음.      
1980년 이스라엘은 '제3차중동전쟁'과 '제4차중동전쟁' 에서 점령한 동예루살렘과 가자지구 및
        골란고원을 자신의 영토로 공식적으로 합병.
1987년 이스라엘의 점령 지역에서 인민봉기(인티파다)가 꾸준히 발생.
1993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가 '팔레스타인 자치 확대에 관한 원칙 선언'에 합의
        하여 가자지구와 웨스트뱅크(요르단강 서안) 일부지역이 팔레스타인 자치지구가 됨.
  

=== 두번째 사실: 이스라엘과 미국의 관계
  
9.11테러 이후에 아프가니스탄 공격을 준비하던 미국은 전쟁이 몹시 어려워질 것을 대비하여 팔레스타인의 건국을 보장하는 조건으로
아랍 국가들을 미국 지지세력으로 끌어들입니다.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속전속결로 끝내려는 전략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랍국가의 별다른 지원
없이 예상외로 아프간 전쟁이 쉽게 끝나버리자 미국은 약속과는 다른 계산을 합니다.
팔레스타인과 아랍국가들을 외면하고 다시 이스라엘만을 지지하는 방향으로 대외정책 노선을 변경한 것입니다. 이게 아랍권에서 반미주의가 사라지지 않는 대표적인 원인이기도 합니다.
  
이대목에서 주목할 점이 미국을 움직이는 이스라엘 사람들입니다.
  
미국내 유대인 인구는 미국 전체인구의 2~3% 수준인 600만~800만명 정도입니다.
그러나 이들이 미국 정·재계와 언론에 미치는 영향력은 아래의 사실을 보면서 짐작하는 그 이상입니다.
   
- 현재 미 연방 상원의원 100명 중 11명, 하원의원 435명 중 26명이 유대인
- 현재 부시정부의 로버트 죌릭 무역대표부 대표와 폴 울포위츠 전 국방부 부장관
- 클린턴정부의 매들린 올브라이트 국무장관, 로버트 루빈 재무장관, 로런스 서머스 재무장관
- 앨런 그린스펀 전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장, 샌포드 웨일 시티그룹 회장,
   모린스 그린버스 AIG 회장, 헨리 폴슨 골드만 삭스 회장
- 미국의 3대 신문(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월스트리트저널)의 주인도 유대인입니다.
http://blog.daum.net/jipark36/12192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