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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향기

어머니

by 아침이슬산에 2009. 10. 30.
 어머니
                 ‧ 21살, 당신은 고개를 두 개 넘어 얼굴도 본적이 없는
                   김씨댁의 큰 아들에게 시집을 왔습니다. 
                 ‧ 27살, 시집온 지 5년만에 자식을 낳았습니다.
                   당신은 그제서야 시댁 어른들한테 며느리 대접을 받았습니다.
                 ‧ 32살, 자식이 밤늦게 급체를 앓았습니다.
                   당신은 자식을 업고 읍내 병원까지 밤길 20리를 달렸습니다.
                 ‧ 40살, 그 해 겨울은 유난히 추웠습니다.
                   당신은 자식이 학교에서 돌아올 무렵이면 
                   자식의 외투를 입고 동구밖으로 나갔습니다. 
                   그리고 자식에게 당신의 체온으로 따뜻해진 외투를 입혀 주었습니다.
                  ‧ 52살, 자식이 결혼할 여자라고 집으로 데려왔습니다.
                   당신은 분칠한 모습이 싫었지만 
                   자식이 좋다니까 당신도 좋아하셨습니다. 
                 ‧ 60살, 환갑이라고 자식이 모처럼 돈을 보냈습니다.
                   당신은 그 돈으로 자식의 보약을 지었습니다.
                 ‧ 65살, 자식내외가 바쁘다며 명절에 고향에 못 내려온다고 했습니다.
                   당신은 동네 사람들에게 아들이 바빠서 아침에 일찍 올라갔다며
                   당신 평생 처음으로 거짓말을 했습니다.
                   오직 하나, 자식 잘 되기를 바라며 살아 온 한 평생, 하지만.....
                   이제는 깊게 주름진 얼굴로 남으신 당신,
                   우리는 당신을 어머니라고 부릅니다. 
 아버지
                 ‧ 21살, 14시간을 기다려서야 자식의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당신은 신을 믿지 않았지만 당신도 모르게 기도를 올렸습니다.
                 ‧ 37살, 자식이 초등학교를 들어가 우등상을 탔습니다.
                   당신은 액자를 만들어 가장 잘 보이는 곳에 걸어 두었습니다.
                   아직도 당신의 방에는 누렇게 바랜 액자가 걸려있습니다.
                 ‧ 43살, 일요일 아침, 모처럼 자식과 뒷산 약수터를 올라갔습니다.
                   이웃 사람들이 자식이 아버지를 닮았다며 인사를 건넸습니다.
                   당신은 괜히 기분이 좋았습니다.
                 ‧ 48살, 자식이 대학 입학 시험을 보러 갔습니다.
                   당신은 평소와 다름없이 출근했지만 
                   하루종일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습니다.
                 ‧ 53살, 자식이 첫 월급을 타서 내의를 사왔습니다.
                   당신은 쓸데없이 돈을 쓴다고 나무랐지만 
                   밤이 늦도록 내의를 입어보고 또 입어 봤습니다.
                 ‧ 61살, 딸이 시집가는 날이었습니다.
                   딸은 도둑같은 사위얼굴을 쳐다보며 함박웃음을 피웠습니다.
                   당신은 나이 들고서 처음으로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오직 하나, 자식 잘 되기를 바라며 살아온 한 평생, 하지만.....
                   이제는 깊게 주름진 얼굴로 남으신 당신,
                   우리는 당신을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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