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마나슬루 (14년)

트래킹 15일차(1)...부다나트, 세계 최대 불탑

by 아침이슬산에 2015. 1. 19.

.

.

.

 

 

[2014-11-15] 월요일

 

 히말라야 마나슬루 트래킹 15일차 (1)

 

네팔에서의 마지막 날, '부다나트' 둘러보기

 

.

.

.

 

.

히말라야의 나라, 네팔에서의 마지막 날이다
아침일찍 호텔에서 조식 부페를 기다리는 동안
일행인 모모씨의 약간의 부상으로 사마가온에서 띄운 헬기 비용문제로 약간의 실랑이가 있었다.
이문제는 여행사와 연걸된 문제이기도 해서, 나중에 기회되면 다시 언급을 해야겠다
 
어쨋던, 맛난 서구식 아침을 잘 먹고
인천행 출국 시간 오후 1시반 까지 여유가 있으니
 카투만두 '부다 나트 (Boudhanath) ' 라는 곳을 관광한다
참, 간만에 관광객 모드가 되어 둘레둘레 구경을 해 본다 
부다나트는 세계 최대 불탑 이며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깨달음을 상징하는 제3의 눈이 그려져 있는 불탑
 
 
 
 

이 탑에는 얼굴이 있다.
카트만두 하늘에 40미터 높이로 불쑥 솟아올라
사방을 바라보는 커다란 눈이 동서남북에 두 개씩 여덟 개,
오직 완벽한 지혜를 갖춘 자만이 가질 수 있다는 제3의 눈이 그 사이에 하나씩 네 개
그리고 코가 있어야 할 자리마다 만법귀일(萬法歸一)을 상징하는 네팔 숫자 1이 그려져 있는 얼굴이다.
들을 것도 말할 것도 없다는 무정(無情)한 얼굴이다.
그 얼굴에는 귀도 없고 입도 없다.
통찰과 직관의 법안(法眼)을 상징하는 눈들만 있을 뿐이다.
금방 닫힐 듯 윗 눈꺼풀 가운데가 살짝 늘어진 것은
더 이상 볼 것도 말 것도 없는 선정(禪定)에 들었다는 뜻이리라.
전설에 의하면, 이 탑이 서 있는 자리 부다나트(Budha Nath)는 물의 신 ‘부다(Budha)’가 거하는 ‘자리(Nath)’이다.
 
 
 

 

 
물의 신 부다는 달의 신 ‘소마’와 별의 신 ‘타라’를 부모로 태어난 지혜의 신이라고 한다.

또한 부다나트가 속해 있는 카트만두의 지형은
불교가 힌두교를 수용하면서 나온 밀교(密敎)에서 ‘만다라’라고 부르는
상징적인 그림으로 표현한 깨달음의 세계와 일치한다.
그리하여 우주의 모든 상서로운 기운이 모인다고 본 이곳에 만다라를 입체화시킨 탑을 세운 것이다.
날마다 새벽부터 이 탑에 찾아와 탑돌이를 하는 수많은 티베트 불교도들은
밀교의 만트라 옴마니밧메훔을 끝없이 되풀이하여 외운다.
한 손에는 염주를 들고 또 한 손에는 마니차라고 부르는 기도 용구를 돌리는 사람들도 있고,
탑신 둘레에 고정시킨 수많은 마니차를 일일이 돌리는 사람들도 있다.
또 어떤 사람들은 한 걸음 뗄때마다 이마를 땅에 대는 오체투지의 정례를 바치면서 옴마니밧메훔을 읊조린다.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또한 관세음보살님께 귀의하옵나니
 생노병사하는 우리의 모든 업장을 소멸케 하여 이 삶의 끝없는 속박에서 벗어나게 해 주소서…
 

 

 
 

 

 

 


한자로 진언(眞言)이라고도 하는 여섯 글자의 만트라 옴마니밧메훔은 대충 위와 같은 소망을 함축하고 있다는데,
관음경이라는 티베트 불교 경전에 의하면 이 만트라는 입으로 불러 공덕이 있을 뿐만 아니라
그 글자를 몸에 지니거나 집에 두어도 생사 윤회에서 해탈하는 원인이 된다고 한다.
그리하여 탑돌이를 하는 사람들이 손에 든 마니차나 탑 둘레에 장식처럼 고정시킨 마니차에도
옴마니밧메훔 여섯 글자가 새겨져 있으며 탑신을 에워싼 깃발 타르초나 룽다에도 이 만트라가 새겨져 있다.
부다나트의 새벽은 해탈을 소망하는 사람들의 만트라 옴마니밧메훔과 함께 밝아 온다.
 

 


그들은 부다나트가 히말라야의 성스러운 기운이 응집된 곳이며,
 그 중심에 서있는 부다나트의 탑을 돌면서 만트라 옴마니밧메훔을 외우면
해탈은 둘째치고 못 이룰 소원이 없다고 철썩 같이 믿는다.
그래서 아주 먼 변방 또는 깊은 산골에 사는 사람들도 평생에 한 번이라도
이 탑을 찾아와 탑돌이 하는 것을 소원으로 삼는다.
 

 

 

 

 

 
 
부다나트는 탑 주변에 모여드는 사람들이 하도 많아서 자연스런 시장이 형성되었다.
식당, 여관, 가게들이 있고, 야채나 옷가지를 파는 노점상이 있으며,
각종 걸인들과 주인 없는 개들 그리고 건달들이나 범법자들까지 포함하는
각양각색의 인종들이 모여들어 또 하나의 사바세계를 이루고 있기도 하다. 
 
 
   
 
 
 
탑이 언제부터 그 자리에 있었는지는 확실치 않다.
아주 오랜 옛날에 이곳 부다나트를 순례 중에 열반한 티베트의 고승
카샤의 사리를 모시기 위해서 세운 자그마한 사리탑에서 비롯되었다는 설이 그중 유력하다.
문수보살의 사리를 모셨다든지, 석가여래의 사리를 모셨다는 설도 있지만
이는 최초의 작은 탑을 중창할 때마다 거기 동참한 유력자들이 일부러 유포시킨 설일 가능성이 다분하다.
그리고 탑이 지금의 규모와 형태로 발전한 것은 약 150년 전이라는 설도 있다.
약 150년 전, 네팔 왕을 대신하여 네팔을 통치했던 섭정 라나가
외교를 통해 중국과의 전쟁을 피하게 해 준 티베트계 승려에게
탑을 중심으로 한 부다나트 일대를 독자적으로 다스릴 수 있는 권한과 그 권한의 세습을 부여하고
치외법권을 인정한 일이 있었는데, 탑은 당시 네팔 섭정과 그 승려에 의해 지금의 규모나 형태로 발전했다는 것이다.
한편 부다나트를 다스렸던 티베트계 승려 치네 라마(중국 스님이라는 뜻)는
네팔 왕국의 섭정 라나의 딸과 결혼했고,
그 자손들이 대를 이어 부다나트 일대를 다스려왔으나
5대에 이른 지금에 와서는 세력을 잃고 그 명맥만 간신히 이어오고 있다.
 
글...<Monthly Mountain>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