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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 이태리 토스카나 로마

신이 내린 천재 미켈란젤로의 걸작 '천지창조' 천장화

by 아침이슬산에 2022. 7. 20.

이태리 토스카나/로마 출사여행-32

로마 바티칸 - 2일차 (2)

2022-05-12

 

 

<시스티나 성당>

시스티나 성당(Cappella Sistina)은 식스토 4세의 명을 받은 피렌체 출신의 건축가 바치오 폰텔리(Baccio Pontelli, 1450~1492)의 설계로 1477년에 착공해 1481년에 완공되었다.

‘시스티나’라는 이름은 ‘식스토’ 교황의 이름에서 비롯된 것이다.

옛 성당 터에 새로 지은 이 건물은 예루살렘의 솔로몬 신전을 본떠 설계되었다.

가로 13미터, 세로 40미터에 높이 20미터인 이 ‘새로운 솔로몬 신전’은 종교적 역할뿐 아니라

유사시에 교황과 그 측근들을 보호할 수 있는 일종의 요새 같은 역할도 겸했으며, 훗날엔 감옥으로까지 사용되기도 했다.

 

 

박물관 관람후 이어지는 시스티나 성당행

긴~~ 회랑을 따라 시스티나로 향하다가 잠시 밖이 보이는 창과 베란다가 있어 

그야말로 숨쉬기 공간인듯 하다

 

 

 

시스티나 까지 긴 통로를 따라가면서 머리를 계속 들고 천장을 보아야 한다 ㅠㅠ

정말 모든 구석구석 정밀한 그림들이 탄성을 계속 자아내게 한다

 

너무 방대하여 여기서도 15mm 어안으로....

 

 

 

자세히 작품들을 알거나 기억할 수도 없고

그냥 눈에 띄는 몇몇 장면만....

 

 

어안이라야 가능했던 천장.... 크아~~` 멋지다

크게 확대해 보니 가슴이 다 쿵쿵 거린다 ㅎㅎㅎ

 

 

 

방향을 바꾸어 봤는데.... 끼울어졌넹

 

 

 

아래에서 몸통만 남은 조각작품도 있는데... 

미켈란젤로가 가장 마음에 두고 자신의 작품에 응용했다는 그리스에서 출토된 토르소 조각상 (헤라클래스상 이라고도 함)

 

 

 

앞에 커다라 로마 네로황제의 욕조

 

바닥도 물론 놀랍도록 완벽한 작품이다  대리석인가??

색갈있는 작은 조각으로 그림을 만들었다

어안으로 담아 마치 둥근 솟뚜껑 같네 ㅎㅎ

 

 

 

점점 가까워 지는 시스티나

 

 

중간에 창으로 새어 들어오는 빛속에 일행중 똘똘이 친구가 멋진 포즈로 봉사?중 ㅋ

 

 

 

자, 드디어 시스티나 성당 입구다

사람들이 많아서 훅훅 더운 기운이 느껴진다

 

 

 

 

그리고 드디어~~~

드디어 시스티나 성당에 입성했다.

아~~~~ !!  그런데, 성당내부는 촬영금지다. 

여기저기 경비가 매의 눈으로 감시를 하다가 카메라를 만지작거리면 쫒아와 제지를 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경비를 피해 번개처럼 몰래 몇장을 찍었다는.....

이게 애절한 마음이 있어 가능하지 않았을까!! ㅠㅠㅠ)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의 제작 기간은 1508년부터 1512년이다. 중간에 율리오 2세가 경비를 제대로 지급하지 않아 14개월 동안 작업이 중단되었던 것을 감안한다면 이 짧은 작업 기간은 실로 경이로울 정도다. 라파엘로가 수많은 조수를 기용하여 거의 협업에 가까운 작업을 했다면 미켈란젤로의 조수들은 그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조수’의 역할만 했을 뿐, 극히 일부를 제외한 대부분을 미켈란젤로 혼자 힘으로 그렸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가로 14미터, 세로 41미터의 공간에, 그것도 바닥이나 벽도 아닌 천장에 무려 343명에 달하는 인간군상과 배경을, 대충이 아니라 ‘완벽하게’ 그려 넣었다는 것은 그야말로 기적이다/다음백과

 

 

 

조각가이자 화가, 건축가이자 시인이었던 천재, 미켈란젤로의 신이내린 걸작 천지창조 천장화.....

그중에서 우리에게 가장 많이 알려져 익숙하 그림찾기 !!

<아담의 창조>   ...   〈아담의 창조〉 - Daum 백과

 

경비 몰래 핸폰샷도 성공 !! ㅋㅋㅋ

 

 

 

작업이 유화가 아닌 프레스코화라는 점도 미켈란젤로의 천재성을 입증한다. 프레스코는 벽면에 회반죽을 바른 뒤에 그것이 마르기 전에 안료를 입혀 그림을 그리는 것으로, 빨리 그림을 그려야 하고 수정이 필요한 경우 그 부분을 죄다 뜯어내야 한다. 따라서 가능한 한 빨리 정확하게 그려야 하는, 굉장한 기술이 필요하다. 게다가 미켈란젤로는 그 이전까지 제대로 된 프레스코화 작업을 해본 적도 없었다.

그는 약 18미터 높이의 비계를 만든 뒤 그 위에서 작업했다. 좁은 공간에서 고개를 뒤로 젖히고 그림을 그리느라 나중에는 고개를 앞으로 숙일 수도 없을 지경에 이르렀고, 시력 저하에 욕창을 비롯한 온갖 후유증을 다 앓게 되었다고 한다. 물론 이런 이야기들은 미켈란젤로가 78세 되던 해에 그의 전기 《미켈란젤로의 생애》(1553)를 발간한 제자 화가이자 작가인 아스카니오 콘디비나 미켈란젤로를 광적으로 숭배하던 바사리가 만들어낸 다소 과장이 섞인 이야기일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는 그림 실력은 둘째 치고 체력적으로도 인간 승리임에 틀림없다. 실제로 그는 작업을 하는 동안 가족이나 지인에게 보낸 편지에 자주 자신이 ‘이제껏 겪은 것 중에 가장 심한’ 육체적 피로에 시달린다고 고백하곤 했다.

미켈란젤로는 원래 천장과 벽이 연결되는 부분에 12사도의 모습을 담고, 중앙은 적당한 장식을 그려 마감하려고 했다. 하지만 이내 마음을 고쳐먹고 교황에게 바뀐 구상을 전했다. 율리오 2세는 흔쾌히 이 천재의 변덕을 이해했고, 이번엔 “네 마음대로 하는 주문”을 했노라 공언했다.

 

 

시스티나 천당화 배치도 /구글

미켈란젤로는 중앙을 9면으로 나누어 그 안에 《창세기》의 장면들을 그려 넣었다. 그중 제단 벽으로부터 첫째, 셋째, 다섯째, 아홉째에 해당하는 그림은 액자틀을 넣어서 그렸고, 그 모퉁이에 이뉴디라고 하는 총 20명의 누드상과 10개의 청동 메달리온을 넣어 장식했다. 메달리온은 방패 모양으로 건축에서 원형 모양의 양각 조각을 뜻한다. 이들 이뉴디들이 들고 있는 참나무 이파리나 도토리 장식은 식스토 4세와 율리오 2세를 배출한 로베레 가문(라파엘로 산치오 〈정의〉 항목 참조)을 상징한다. 둘째, 넷째, 여섯째, 여덟째에 해당하는 그림은 액자가 없다

 

천장화에 관한 더 많은 정보 바로가기 -->  미켈란젤로의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 - Daum 백과

 

 

시스티나 성당 내부의 제대도 촬영성공 !!

 

기여코 92년도에 와서 공사중이라 못봤던 시스티나 천장화 '천지창조'를 보고 나니

어쩐지 할일 다한듯 후련한 기분이 든다 ㅎㅎ

 

 

안내되는 출구로 나가니 이런 달팽이 계단을 통해 내려가게 되어있다

이곳은 사진가들이 종교를 떠나 작품으로 많이 찍는 곳이기도 하다

 

 

 

 

다 내려와서 천장쪽을 올려다 보며

ㅋㅋ... 멋있다 !

 

 

시스티나 관람을 마치고 베드로 광장쪽으로 이동하여 광장의 분수대등도 몇컷 해 보며

오후 촬영을 이어간다

 

...계속